또 하나의 작은 결실
작성자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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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작은 결실


오곡백과가 결실을 맺고 푸른 하늘이 더욱 선명한 색갈로 변해만 가는 어느 상쾌한 가을날, 나의 진찰실에는 초량에서 살고 있는 30대 후반의 갑상선 아주머니 환자가 진료받기 위해 들어왔다.
수술후 갑상선기능항진 증세가 약간 있어 요즘 아주 작은 양의 항갑상선약제를 복용하고 있는 환자였다.
이 아주머니 환자는 갑상선 질환으로 고생한지가 10년이 넘었는데 우연히 나의 병원을 찾게 되어 13년만에 갑상선기능항진증 수술을 받게 되었다.
눈이 약간 돌출되어 있고 몸이 야윈 환자이었는데 인정도 많고 활달한 성격이라 오랜동안 이 병으로 시달려도 항상 명랑한 편이며 같이 온 남편도 아주 호인이었다.
이 아주머니가 오늘 갑상선약을 타러와서 잠간동안 진찰하고 처방을 받는 동안에 하는 얘기가 국민학교 다니는 딸아이 학교에서 며칠전 가을 운동회를 하였는데 학부모 달리기 순서에 나아가 달리기에서 1등을 하였다고 하며 아주 좋아하였다.

갑상선수술하기 전에는 늘 힘이 없고 숨이 차서 계단을 오를 때는 쉬어서 올라가고 멀리 걷지도 못하였는데 운동회에 나아가서 힘좋은 어머니들이 경주하는 가운데 1등을 했다는 사실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수술전에는 코피도 자주 흘렸는데 이제 코피도 흘리지 않고 수술을 받고난 후에 좋아진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라 하며 고마와하는 말들을 한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인사를 하며 돌아가는 환자를 보며 이러한 의사로서의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께 마음속으로 감사를 드렸다.


우리나라에서의 의사는 하루에 많은 환자들을 대해야 한다. 특히 의료보험시대의 의료계에는 많은 환자들을 보아야만 수입이 오르고 병원 경영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환자들을 보아야 하는 의사들은 항상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곤해 있기 마련이다. 또 의사는 여러계층의 여러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모두 다 의료의 만족을 드릴 수가 없어 개중에는 성을 내는 사람, 불만을 호소하는 사람, 무례한 언행을 하는 사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등등..... 이러한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한 진료를 강요당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의료인은 그야말로 피곤한 직업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이러한 의료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 목적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본다.


우리 의료인은 개개인의 물질적 풍요로움과 여가를 즐기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일까.
농부는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기쁜 마음으로 추수를 하며 보람을 느낀다.
교수들은 제자들을 양성하고 논문을 발표하여 학문 발전과 명예를 지키는 것이 보람일 것이다.
우리 임상 진료의사들은 의료보험 환자 보고 환자에게서 받는 본인 부담금과 의료보험조합에 청구하는 진료비가 그 보람이며 대가일까.
의료보험조합이란 이름만 들어도 불쾌하며 한달에 한번씩 얼토당토 않는 항목들을 삭감하는 진료비 내역서, 의보재정의 적자 이유로 의사의 정당한 진료를 인정않고 의사들에게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는 정부와 이에 동조하는 언론과 시민단체 등 등...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의사의 존경과 보람은 이미 찾아보기가 힘든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인륜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의 생명을 치료하는 의술은 숭고한 일이다. 의술은 인술이며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초량에 사는 갑상선환자가 수술해준 의사인 나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고향인 하동에 갔다가 올 때에 잘익은 감도 가져오고 언젠가는 시골 논에서 잡았다는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많이 가져와 병원식당에서 전 직원이 추어탕 파티를 연 흐뭇한 일도 있었다.
이 세상 속에 살아가며 이러한 감사하는 인간관계를 많이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의료인들의 진정한 보람된 일이 아닐까.
더많은 환자들에게 이러한 감사와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우리 의사들의 또다른 결실이며 보람일 것이다.

우리 보다 앞서 살아가신 선배 의료인들께서는 더 많은 이러한 결실들을 이루며 살아가셨을 것이다.
하늘이 더 높아만 가는 이 가을에 초량에 사는 아주머니는 나에게 또 다른 하나의 작은 결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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